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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역사
 관리자    | 2007·08·11 18:14
한국에서 축구가 전파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인 19세기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축구와는 조금 달랐겠지만<삼국사기>에 의하면  옛날 신라시대에도 ‘축국(蹴鞠)’이란 놀이 형태의 공차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가 농주(弄珠)를 가지고 노는 축국을 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축국은 둥근 놀이기구, 이를테면 가축의 방광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차거나 던지는 놀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식 축구의 보급은 1904년 서울의 관립 외국어 학교에서 체육 과목의 하나로서 채택하면서부터이다. 한국 최초의 공개 축구 경기는 1905년 6월 10일 서울 훈련원(오늘날의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시합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하에 경기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이다.

1921년 제 1회 全조선 축구대회가 개최되고, 이어 1928년 5월 22일 조선심판협회(조선축구협회의 전신)가 창립됨으로써 한국에 정식으로 축구가 보급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1933년 9월 19일에는 조선축구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었고, 초대 회장은 박승빈씨가 선출되었다.

특별한 장비없이 누구나 즐길수 있는 축구의 특성은 당시 가난했던 민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으며, 축구 선수에게 필요한 굳센 체력과 강인한 투쟁심은 한국민의 정서와도 일치했다.

여기에 1929년부터 시작된 경성(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 대항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며 전 민족이 즐기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축구는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청량제였고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일제 말기 해산되었던 조선축구협회는 해방과 함께 1948년 9월 4일 대한축구협회로 개칭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동시에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했고, 1954년에는 AFC(아시아 축구연맹)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에는 한국의 이름으로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발을 내딛었고, 1954년에는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최초로 진출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한국 축구는 1956년 제1회, 1960년 제 2회 아시안컵에서 연속으로 우승함으로써 아시아 축구 챔피언으로서의 기세를 드높였다.

이어 1960년대 이후 메르데카컵, 킹스컵, 아시안게임,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등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각종 축구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차지함으로써 한국은 명실상부한 아시아 축구 최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각종 대회에서 기록한 혁혁한 성적과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와 용감성으로 인해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두려움과 경탄의 대상이었다.

1971년에는 한국 최초의 국제 축구대회인 박대통령배 아시아 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세계 각국의 대표팀, 유명 클럽팀이 참가한 가운데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아시아 최고 권위의 대회로 성장한 박대통령배 아시아 축구대회는 1976년부터는 박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 1980년부터는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로 대회 명칭이 변경되어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1995년부터 코리아컵으로 이름을 바꾸어 1999년까지 개최되었다.

1983년 ‘수퍼리그’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한국의 프로축구는 축구팬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했을 뿐 아니라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아시아 최초로 탄생한 본격 프로리그로서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게 프로축구 출범을 자극하였다.
5개팀으로 시작한 한국 프로축구는 2005년 현재 13개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K-리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각 도시에서 펼쳐지는 프로리그는 전국을 축구 열풍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또 1996년부터 3년동안 아시아 클럽 선수권 우승을 한국 프로팀이 차지할 정도로 그 수준은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6회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함으로써 아시아 최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통산 7회)이 됨은 물론, 세계 수준에 근접한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지구촌의 모든 축구팬에게 과시했다.

또한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20세 이하) 축구대회에서 한국의 어린 영웅들은 축구 강국들을 물리치고 4위를 차지하여 한국 축구의 놀라운 힘을 세계에 보여주기도 했다. 불굴의 투혼과 뛰어난 기동력, 지칠줄 모르는 체력은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되었으며,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은 축구 스타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겐 최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랑스런 한국 축구의 역사는 드디어 세계 축구의 최고 제전인 월드컵 개최로 화려하게 꽃피우게 되었다. 축구 사랑, 나라 사랑의 한마음으로 온 국민이 보여준 뜨거운 열기와 함께 추진된 월드컵 유치 운동은 결국 1996년 5월 31일 한국과 일본의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2002년 6월 한달 한.일 양국은 물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2002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참가 사상 첫 승리를 거둔데 이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잇따라 격파하고 기적처럼 4강에 진출, 한국 축구 100년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이뤄냈다.
2002 월드컵은 한국 축구가 세계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10개의 현대식 스타디움, 대표팀 트레이닝 센터 건립 등 축구 전반에 걸친 인프라 구축을 가능케 했다.
수많은 난관과 시련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 국민의 뜨거운 축구 사랑, 그리고 선수들이 보여준 불굴의 투지,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빛나는 역사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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