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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역사 찾기 프로젝트 - 마지막편 인도네시아
 관리자    | 2007·09·10 09:55
싱가포르 창기 국제공항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뒤 갈아탄 인도네시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필자는 또 한 가지 소스라칠만한 소식을 접했다. 8월 17일이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이라는 것이다. 순간 뇌리를 스친 생각은, 독립기념일이라면 당연히 국립도서관은 문을 닫을 터이고, 이곳에서의 일정도 만만치 않겠다는 것이었다. 호텔에 도착해 한인회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이번 독립기념일은 금요일인데다 대부분의 관공서와 상점들이 금토일 3일간 연휴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선택을 해야 했다. 국립 도서관은 5시경에 문을 닫고, 필자가 묵는 호텔 바로 앞에는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이 있으며 그 안에 인도네시아축구연맹(PSSI)이 있다. 일단 필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축구연맹부터 방문했다.

인도네시아는 언어적으로도 그렇지만 외관상으로도 말레이시아와 매우 유사했다. 말레이시아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었던 히잡(차도르)을 쓴 커리어 우먼들이 이곳에서도 쉽게 목격되었다. 축구연맹을 방문하자 필자를 응대한 담당자도 역시 같은 모습이었다.

파리나 수라야(Farina Suraya)라는 이름의 그 여직원은 현재 경기국 담당자가 인도네시아 프로 연맹에 가 있으므로 월요일이나 되어야 출근할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약간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이들이 보유하고 있을 법한 자료에 대해 캐물었으나 끝내 원하는 자료는 얻지 못했다. 그녀의 말로는 인도네시아 축구연맹 역시 금토일 3일간 연휴를 갖고 월요일에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과거 유행했던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에서 독립기념일로 인해 낭패를 본지 불과 하루 만에 또다시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이라는 상상도 못했던 암초에 부딪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8월 15일에 독립한 국가가 많은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8월 17일은 또 뭐란 말인가?

어쨌든 필자는 17일 하루를 호텔에서 휴식한 뒤 다음날 오전, 자카르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국립 도서관 방문을 강행했다. 어제저녁 한국 식당 종업원에게서 도서관은 3일 연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도서관은 문을 열지 않았고, 인도네시아어로 쓰인 안내문을 통해 월요일에 다시 개관한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당초 필자는 19일 밤 비행기로 자카르타를 떠나 20일 오전에는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니 월요일인 20일 밤까지는 이곳에 머물러야만 한다(자카르타-인천행 비행기는 밤 9시 40분에만 있다).

현재까지의 결과만으로도 이번 원정에서 필자와 대한축구협회는 큰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지만, 최종 방문지인 이곳 인도네시아에서의 조사 결과 역시 꽤 중요한 것이다.

3일간의, 필자로서는 꽤 지루했던 연휴가 끝나고 월요일 오전,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국립도서관(Perpustakaan Nasional)으로 향했다. 시설 자체는 태국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었지만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홍콩보다는 조금 열악했다. 결정적으로 이날따라 도서관 내의 전자 검색 시스템이 모두 고장나는 바람에 필자는 신문 이외의 자료들은 열람해보기가 힘들었다.

신문 열람실은 엘리베이터가 끝나는 7층 구석에 위치한 별도의 계단을 통해 8층 한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제복을 입은 몇 명의 직원들이 지키고 있었으며 열람 방법은 자유 열람이 아닌, 신청식이었다. 이곳 최대의 신문이라고 들었던 KOMPAS지(인도네시아어 발행)를 요청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 신문은 발행 면수는 많았지만 필자가 필요한 부분인 경기 라인업을 따로 게재하지는 않는 듯했다. 게다가 제본으로 보관되어 있던 탓인지 중간 중간 없는 날짜와 달이 꽤 많았다. 대체로 보관 상태는 크게 미흡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과거 대학 시절 동남아 정치에 관한 강의에서 이 지역에 빈번했던 여러 소요 사태들로 인해 사회 기반 시설이 종종 마비된 적이 있었다고 배웠는데, 그 때문인 듯도 했다.

신문 열람실을 맴돌던 필자는 Pelitah라는 신문을 보게 되었다. 이 신문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알 수 없으나, 뜻밖에도 그간 미궁 속에 빠져 있던 1975년 자카르타시 창립 기념대회에 대한 내용을 찾게 되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이 조별 예선에서 대전했던 버마 및 호주 B팀과의 경기는 상세한 내용이 게재되었지만 홈팀 인도네시아가 4강에서 버마에게 패해 우승에 실패했던 때문인지 4강전과 3,4위전(한국-인도네시아) 기사는 이에 비해 조금 부실했다.

6년 뒤인 1981년 8월에 벌어진 같은 대회에 대한 자료는 그런대로 충실히 남아 있었다.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친선 경기에서 만난 동유럽 국가인 불가리아를 상대로 한두 차례의 대전에 관한 내용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소득이었다.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자신문중 하나인 Jakarta Time을 무심코 검색하던 중 1968년 8월분에서 희한한 부분을 발견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에서 있었던 양팀 간의 경기 상보가 올라왔는데, 달랑 4면을 발행하는 이 신문이 라인업까지 보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지면이 작다 보니 선수 이름 중 성만을 표시했는데, 한국 선수들의 경우 Kim, Lee, Park 등으로만 표기되어 있어 실제 출전 선수를 식별해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다만, 선수별로 포지션이 표기되어 있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다. 당초 인도네시아에서 예정했던 경기들 중 찾아낸 것은 약 50% 정도이다.

이 열람실은 4시에 닫는다고 하여, 3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필자는 조사를 마치고 숙소 근방에 있는 인도네시아 축구연맹을 다시 방문했다. 다시 만난 파리나 씨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여전히 누락되어 있는 나머지 절반인 7경기의 목록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그녀는 추후 이 경기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 곧바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한 뒤, 필자에게 작별의 악수를 청했다.

여기에서 필자는 다시 한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히잡을 쓰고 있어 무슬림임을 알 수 있었던 파리나 씨와는 사실 3일 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악수를 했던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이슬람 율법에 익숙치 않은 필자는 무슬림 여성과 악수를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여전히 판단키가 힘들었다. 파리나씨 역시 필자의 이런 심리를 읽기라도 한 듯, 빙긋 웃으며 손을 잡고 작별을 고한 뒤에야 필자는 안도(?)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축구연맹 방문을 끝으로 필자는 이번 원정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저녁이 되어 공항으로 이동, 탑승 수속을 하기도 전에 수화물 검사부터 실시하는 특이한 과정을 겪은 뒤 밤 10시경 자카르타를 출발, 다음날 오전 7시를 즈음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21일간 진행되었던, '잃어버린 기록을 찾아서' 떠났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당초 출국 전 필자가 예정했던 조사 대상 경기는 총 110경기 중 중동에서 벌어진 20여 경기를 제외한 90여 회의 A매치들이었고, 이중 약 80% 정도를 발굴해낸 것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것은 향후 대한축구협회에 출두해 대조 및 정리 작업을 끝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원정은 비교적 성공작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곳곳에서 맞부딪혔던 돌출 변수들과 무더운 날씨로 인한 신체적 어려움 속에서도 비교적 조사 루트가 단순했던 탓에 결정적 난관은 없었고, 막연히만 알고 있었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소득일 것이다.

[플라마 l 윤형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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