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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역사찾기 프로젝트-4편 싱가포르 [플라마]
 관리자    | 2007·08·30 11:01
동남아시아 최대의 부국인 싱가포르는 도시 외관부터 이웃 나라들과는 크게 달랐다.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물과 도로 배열은 물론, 한국인과 유사한 외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싱가포르 사람들의 모습은 필자를 한때 당황케 했다. 국가별 토플 점수 평균치에서 싱가포르가 1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들을 집계에 포함시키는 것은 반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기 위해 택시를 잡을 때에도, 기사들이 직접 흥정을 시도해오거나 바가지 요금의 의혹을 갖게 했던 말레이시아, 태국과는 달리 공항 직원이 택시를 일렬로 정렬한 뒤 나오는 승객 순서대로 태우는 방식을 채택, 신뢰할 수 있었다. 물론 물가 수준이 높으므로 택시비 자체는 이웃 국가보다 비싼 편이지만 시스템 자체는 매우 믿을 만했다.

이곳에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곧바로 싱가포르 국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16층 높이의 초현대식 건물로서, 지금껏 필자가 가본 곳 중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법집행과 질서 의식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국가답게 도서관 내부도 전혀 빈틈없는 모습이었고, 사서들 역시 모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매우 친절한 자세로 필자를 도와줬다.

이 도서관에는 약 2만여 개의 마이크로필름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싱가포르의 공용어인 영어, 타밀어, 중국어, 말레이어로 발행되는 현지 신문은 물론, 이웃 말레이시아의 신문들까지도 일부 보유하고 있었다. 필자는 운 좋게도 비용 문제 때문에 NSTP에서 볼 수 없었던 년도의 신문들까지 이곳에서 열람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주로 검색했던 신문은 The Straits Times였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최고 권위지라고 지목한 이 신문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말레이시아의 최대 권위지인 New Straits Times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신문이다.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두 신문도 갈라졌지만, 보도 형태나 지면 구성 등은 여전히 유사했다. 이 신문은 Singapore Press Holdings (SPH) 그룹 소유이다.

이곳에서 얻은 두 가지 중요한 성과는, 1953년 동남아 원정의 실체와 1984년 아시안컵에 대한 것이다.

한국전쟁 휴전 직전인 1953년 4월에 시행된 홍콩과 싱가포르 원정은 여전히 그 대전 상대와 날짜 등에 대한 신빙성이 의문시되어왔다. 이곳과 홍콩에서 찾은 자료들을 대조한 결과 어렴풋한 얼개를 그릴 수 있었다.

1984년 아시안컵은 심지어 AFC에서도 전혀 자료가 있지 않은 부분인데, 이 대회를 주최했던 싱가포르의 언론들은 매 경기 상보를 발행하며 비교적 상세히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들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안컵의 역사를 설명할 때에도 꽤 좋은 사료가 되리라 확신한다.

다음날 오전에는 시 북부 잘란 베사르 스타디움에 위치한 싱가포르 축구협회를 찾았다. 큰 기대를 안고 찾아갔지만 의외로 협회의 자료 보존 수준은 실망스러웠다. 협회에서만 25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경기국 리디아 림 씨가 필자를 응대했는데, 대단히 독특한 억양과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는 여러 언론사와 유관 기관에 전화를 걸어 필자를 도와주려고 애썼지만 아쉽게도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싱가포르 축구협회에서 기대했던 또 하나의 정보는 이들의 독립 이전인 1950년대 치른 경기들의 등급 문제였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만족할만한 답변은 얻지 못했다.

경기 등급 문제란,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1965년에 독립했으므로 그 이전까지는 국가로의 지위가 없었음에도, 이미 1954년과 1958년 아시안 게임에 독자적인 팀을 출전시킨 데 대한 것이다. RSSSF에 현존하는 사료를 토대로 하면, 싱가포르가 독자적으로 치른 첫 국제 경기는 1953년 4월 11일에 있었던 한국전(한국 3-2승)인데, 아쉽게도 이 경기의 다음날인 4월 12일이 휴간일이어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싱가포르 축구협회가 1892년에 창립되었다고 하니, 1965년 독립 이전에도 이미 독자적으로 지위를 인정받고 활동해왔었다면 1953년에 한국과 치른 일련의 경기들도 A매치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디아씨의 소개로 인근 국립 경기장에 위치한 스포츠 도서관도 방문했지만 역시 추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스포츠 도서관에는 커먼웰스 게임에 대한 도서와 자료가 많은 것이 이채로웠다. 커먼웰스 게임은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 사이에 벌이는 일종의 올림픽으로, 캐나다, 호주, 남아공,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 참가한다. 이들 국가가 대부분 영어를 모국어 또는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탓에 이들 간의 교류 폭과 깊이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크게 다를 것으로 추측된다. 싱가포르나 콸라룸푸르가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나 국제,단체 등을 유치하며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영어와 이러한 영연방 국가들 사이의 유대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싱가포르는 그 자체가 도시국가로서 작은 규모 때문에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말단까지 미칠 수 있기 때문인지, 하나의 잘 조직된 병영 국가의 이미지를 풍겼다. 같은 중국계라도 홍콩이나 중국 본토 사람들과는 다른 인상이었으며, 얼굴에서부터 가난한 삶에 대한 불만을 읽을 수 있었던 이웃 국가 사람들과는 달리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구김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왠지 모르게 가공된 친절함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했지만, 잘 다져진 국가 체계만큼 최근 상승 일로에 있는 싱가포르 축구의 경기력이 결코 무관치 않음을 추측케 된다.



[플라마 l 윤형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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