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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사커라인]
 관리자    | 2007·12·01 13:06
국내 프로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우리의 대표적 프로 스포츠인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의 종목에서는 이미 '외국인 선수 선발이 한 해 농사를 좌우한다'라는 말이 진리와도 같이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외국인 열풍'은 포항의 우승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 2007 K-리그에도 예외 없이 몰아쳤다.

올시즌 득점왕 까보레(경남)를 비롯해 득점 랭킹 상위권은 외국인 선수들의 이름으로 가득 찼고, 도움왕 따바레즈(포항)는 소속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유력한 MVP 후보로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포항의 '인상적인' 전진 축구를 선도한 세르히오 파리아스 감독도 외국인이었고, 포항의 우승을 결정 짓는 휘슬 소리도 외국인 심판의 입에서 나왔다.

특히 외국인 심판의 경우 지속적으로 잡음을 생산하고 있는 K-리그의 판정 시비와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판정 시비라는 암초에 부딪히며 힘들게 한 시즌을 끌고 온 프로축구연맹은 심판 판정에 가장 예민할 수 밖에 없는 플레이오프에 외국인 심판들을 배정함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어쩌면 올시즌을 통해 극단적으로 드러난 구단과 심판들 사이의 불신을 감안했을 때 이러한 연맹의 결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플레이오프에 깜짝 등장한 독일 분데스리가 출신의 심판들은 상대적으로 매끄러운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주며 특별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다. 이는 경기 중이나 종료 후 심판 판정에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구단 관계자 및 선수들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입증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연맹의 미봉책은 적어도 플레이오프라는 중요한 행사에서는 성공을 거둔 셈이 된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은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국내 심판들의 능력 향상을 위해 지난 2002년 독일축구협회(DFB)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심판에 관한 부분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의 노하우를 습득함으로서 심판 판정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 후 독일 출신 심판들이 국내 프로 경기의 주심으로 나서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게 됐다. 물론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정작 중요한 국내 심판들의 자질이 얼마나 향상됐는지는 아직 의문 투성이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독일 출신 심판들은 플레이오프와 같이 중요한 무대에 단골로 초대되며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판정을 내리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K-리그 발전에 적게나마 일조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6강 플레이오프에서 주심을 맡은 4명의 외국인 심판들보다 더 수준 높은 심판들이 많다고 알려진 독일 분데스리가의 심판 판정에는 논란이 없는가. 분데스리가의 심판들은 항상 존중을 받으며 구단과 선수, 그리고 심판들 사이의 논란은 유독 K-리그에서만 심하게 발생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분데스리가 심판도 신은 아니다

독일축구협회 산하 5개 지역 축구협회에 등록된 심판은 약 8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들을 양성하고 관리하는 체계적 시스템은 우리와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유럽에서도 한 수 배우고 갈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공식적인 프로 리그로 인정하는 1,2부 분데스리가 심판들은 독립된 심판위원회에 속해 위원회를 제외한 어떤 조직으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는 높은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와는 큰 차이점이다.

8만 명의 심판들 모두가 분데스리가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중에서도 하부리그에서 최소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고 능력을 인정 받아야 매년 엄정한 평가를 통해 1,2부 리그 경기가 배정된다. 단적으로 올시즌 분데스리가 주심으로 배정된 인원은 총 20명이다. 명예직의 성격이 강하지만 이러한 경쟁률 때문에 분데스리가 주심으로 나선다는 것은 이 분야에서 독일 최고의 '마이스터(장인)'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고급 인재'를 모시는 독일축구협회의 대우도 깍듯하다. 이들에게는 경기당 500만 원 이상의 수당과 경기 운영에 대한 전권이 쥐어지며 심판 배정과 같은 문제는 심판위원회에 일임하고 더 이상 손을 대지 않는다. 독일에서 그 능력을 인정 받아 UEFA가 주최하는 클럽 대항전에 나서는 심판은 더 많은 수입과 명성을 얻는다. 연맹 산하에 속해 항상 눈치를 봐야 하고 한 경기에 고작 50만 원 정도의 수당을 받는 국내 심판들과는 그 대우 자체가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대우만큼이나 분데스리가 심판은 언론과 팬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독일의 대표적 축구 전문지 '키커'는 물론 타블로이드 신문인 '빌트' 등의 일부 언론들은 경기 후 선수들에 대한 평점은 물론 심판들에 대한 평점도 같이 매긴다. 특히 키커는 판정에 일관성이 없거나 결정적인 오심을 저질렀을 경우 냉정하게 최하 점수를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비디오 판독을 통해 페널티 킥 판정이나 선수에 대한 경고 및 퇴장 등 '민감한' 부분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평점은 바닥을 치는 경우가 많다.

분데스리가의 대부분 심판들은 심판직 외에도 따로 생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례로 FIFA '올해의 심판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2004, 2005) 1988년부터 분데스리가 심판을 맡아보고 있는 마르쿠스 메르크는 치과의사이며,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주심으로 나섰던 헤어베르트 판델은 레슨을 통해 많은 돈을 버는 피아니스트다.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에서 큰 압박을 받지 않는 분데스리가 심판들은 언론과 팬들이 내리는 자신들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명예직에서 명예가 실추된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포항과 성남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주심을 맡은 브레멘 출신의 페터 가겔만 주심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지난 14라운드 프랑크푸르트와 슈투트가르트전 주심을 맡았다. 가겔만 주심은 이 경기에서 코메르츠방크-아레나를 가득 메운 5만여 명의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공정한 판정을 내렸다는 평을 받았고, 키커와 빌트는 나란히 가겔만 주심에게 평점 '2'의 호평으로 공을 치하(?)했다. 그러나 항상 칭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9월 26일 벌어졌던 뉘른베르크와 바이어 레버쿠젠의 경기에서는 오히려 홈 팀 뉘른베르크에 몇몇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며 최악의 평점을 받았다. 또한 10월 19일 벌어졌던 에네르기 코트부스와 뒤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도 모하마두 이드리수(뒤스부르크)의 핸드링 파울을 퇴장으로 연결시키지 않은 것과 전반적으로 선수들의 팔꿈치 사용에 대한 강한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다.

좀 더 스케일이 큰 논란은 대서특필되며 언론과 팬들의 검증을 받기도 한다. 지난 시즌 27라운드 바이에른 뮌헨과 샬케 04전의 주심을 맡은 헤어베르트 판델이 그랬다. 경기 전반에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흐르는 가운데, 후반 23분경 바이에른의 골키퍼 올리버 칸이 코너킥 상황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상대 공격수 쇠렌 라르센의 목을 팔로 감아 쓰러뜨렸다. 이에 상황은 양 팀 선수들의 집단 난투극 직전까지 발전했고 그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팬들은 판델이 칸에게 레드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달지 못했다.

그러나 판델이 칸에게 꺼내든 카드의 색깔은 '노란색'이었고, 샬케 선수들과 벤치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0-1로 뒤지고 있었지만 동점골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바이에른을 압박하고 있었던 샬케의 상황을 감안하면 판델의 판정 하나가 승점을 날렸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경기 후 미르코 슬롬카 감독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은 판델의 판정을 맹비난하기 시작했고 이에 언론까지 동조하며 판델은 큰 곤혹을 치뤄야 했다.

언론들은 200회 이상의 분데스리가 경기 주심으로 나서면서 무려 63명을 그라운드에서 쫓아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판델이 정작 중요한 순간에 판정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좀 더 공격적인 언론들은 중요한 라이벌전에서 판델이 몸을 사렸다며 그의 판정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처럼 순간의 실수가 한 인물의 심판 커리어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냉정한 무대가 독일 분데스리가이기도 하다.

언론의 냉정한 평가와 심판들의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판 판정에 대한 오심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득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골문 앞에서의 득점 여부와 파울은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부분이다. 최근 1,2부 분데스리가를 관장하는 기구인 독일프로리그(DFL)가 '골대 카메라' 시범 시행안을 발표한 것도 이와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골 포스트와 크로스 바에 부착되는 6대의 카메라가 심판의 권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있는 심판들의 부족한 점을 기계의 힘을 빌려 보완하고자 하는 의미지, 그것이 기계에 종속되는 심판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축구리그가 골대 카메라의 시범 도입을 결정하면서 가장 강조한 부분이 바로 심판의 권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의 오심에 비판의 날을 세울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심판의 자질과 판정, 그리고 실수의 가능성까지 존중하는 성숙된 축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심판의 오심을 비난하는 팬들과 패배를 심판 탓으로 돌리는 구단의 모습은 우리나 그들이나 정도만 다를 뿐 동일하게 보여지는 모습이다. 차이점은 그 후 심판들을 대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가 한 나라의 축구 문화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심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시 K-리그 플레이오프로 돌아와 보자.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필자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외국인 심판들이 국내 심판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실제로 프로축구연맹의 관계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비디오 판독 결과 분데스리가 출신 심판들도 국내 심판들만큼 실수를 저지른다는 의외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외국인 심판과 국내 심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외국인 심판들의 매끄러운 경기 운영은 판정에 대한 수긍과 불필요한 파울을 알아서 자제하는 선수들의 근본적 자세 변화에서 기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불경스러운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만약 울산과 대전과의 6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외국인 심판이 국내 심판이 판단한 것과 동일한 성격의 판정을 내렸다면 선수들과 팬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에릭 칸토나의 '쿵푸킥' 마저 공공연히 미화되는 국내팬들의 '유럽축구 사대주의'가 우리 눈에 색안경을 씌우지는 않았을까 말이다.

물론 매년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에 대해 뚜렷한 개선점은 커녕 더욱 더 논란을 심화시키는 연맹과 심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에 있어 선수들과 팬들에게 더 많은 인내심을 전가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는 법이고, 이러한 풍토에서 우리 축구 문화의 발전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선수는 심판을 믿지 못하고, 팬들은 연맹과 경기 자체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있는 현 상황은 K-리그 발전을 위해 꼭 제거해야 할 장애물임은 자명하다.

더욱 더 공정하고 명확한 심판 판정을 위한 제도적, 그리고 기술적 보완 방안은 이미 각종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 이제 사실상 실현 가능한 모든 의견은 팬들의 귀에 익숙해 진 상태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인간인 심판이 그라운드의 판관으로 나서는 한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논란이 단순한 비난과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을 지양하고 좀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는 일정한 기틀의 확립은 그 중요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틀에는 심판 판정의 질을 높이기 위한 모든 수단은 물론 심판과 그들이 내리는 판정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자세가 좀 더 이성적으로 바뀌는 것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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