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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한국 축구의 성지' - 2편. 2007년 9월의 동대문 운동장
 관리자    | 2007·09·10 10:02
◆ 역사속으로 사라질 동대문운동장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대문 운동장을 찾았다. 사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추억이 없다. 학교 다닐 때 체육 교과서에서 몇 번 본 것 같은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딱히 떠올릴 만한 추억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동대문 운동장이란 이름은 나에게 있어서 그만큼 낯선 이름이었다.

지난 4일, 그런 동대문 운동장을 찾았다. 취재를 위해 찾아본 자료와 동대문 운동장의 산증인이라 말할 수 있는 이의재 플라마 고문의 추억담 덕분인지, 전무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번잡한 거리를 지나자 ‘동대문 운동장 주차장’이라고 쓰인 입구가 보였다. 설레임은 동대문 운동장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깨지고 말았다. 너무나 크게 붙어있던 그 주차장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2003년 3월 이후 폐쇄된 동대문 운동장은 현재 임시 주차장 및 풍물시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더 이상 축구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안양공고를 나오신 아버지의 학창시절 얘기 속 동대문 운동장은 축구 열기로 가득했었다. 그 얘기 속 동대문 운동장은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야생마처럼 그라운드를 휘저었고,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은 엄청난 함성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당시 동대문 운동장은 지금의 월드컵 경기장 부럽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주차장으로 변경된 그곳에서 더 이상 동대문 운동장의 옛날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전광판의 모습에 왠지 모를 씁쓸함마저 느껴야 했다.
  
내게는 생애 첫 방문이었지만, 동대문 운동장에서 경기를 많이 보았던 플라마의 총괄 팀장이 동행해서 촬영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주차된 차들로 막혀있는 바로 그곳으로 예전에는 선수들이 입장했다고 한다.

본부석으로 향하는 계단에서부터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낡은 천정과 먼지 쌓인 좌석들. 누군가 앉아서 환호했을 것이고, 누군가 앉아서 기사를 작성했을 그곳은 이제 그렇게 조용히 남겨져 있었다.

‘선수는 경기질서, 관중은 관람질서’ 남아있던 푯말.

요즘의 축구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문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본부석을 돌아보고 관중석으로 들어섰다. 관중이 들어오는 입구 쪽으로 들어가자 먼지 쌓인 좌석 배치도를 볼 수 있었다. ‘한 때, 많은 사람이 저곳에서 좌석 확인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했겠지...’라는 생각이 닿자, 마음이 조금 더 씁쓸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던 옛날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되새기며 계단과 매점, 그리고 화장실을 촬영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없었던 곳이라 그런지 예전과는 많이 변해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옛날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촬영에 임했다. 역시 사람의 온기가 없는 곳은 쉽게 차가워지는 모양인가보다. 사진으로 봤던 동대문 운동장은 사람들의 함성소리로 가득해 보였었는데, 지금의 그곳은 너무나도 차갑게 식어있었다.

“예전에는 복도가 넓어 보였는데 지금 보니 되게 좁네...”
“저쪽에서 샤샤가 골을 넣었었지”
“에휴, 이제 흉물이 돼버렸네”

변해버린 운동장의 모습을 지켜보며 옆에 있던 팀장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낡은 전광판을 바라보며 볼 때도 많은 생각을 했다. 저 전광판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초조해했을까? 점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호했을까? 하지만, 지금의 전광판은 더 이상 축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그저 조용히 서있을 뿐이었다.

관중석으로 들어서자 낡고 녹슬어버린 의자들이 보였다. 바닥 틈새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기도 했다. 관중석 위쪽으로는 풍물시장 철거반대에 대한 걸개가 있었다. 더 이상 이곳은 동대문 운동장이 아닌 풍물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듯했다.

운동장 뒤편에 남아있던 표지판에는 엄지손가락보다 큰 거미들이 주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거미들도 이런 환경이 익숙한지 늘어져서 한가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대한 동대문 운동장의 예전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출입구나 매표소는 노점상들에게 가려져서 흔적을 찾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시간이 멈춰버린 늙어버린 운동장의 모습은 마치 도심 속의 유적지 같았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이런 식으로 버려져 있는 것보다는 철거를 하는 편이 정말 더 나은 것인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힐 때쯤 경기장을 나섰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먼지 쌓이고 낡은 경기장을 둘러봤지만, 동대문 운동장의 그런 모습들이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축구선수였다던 나의 할아버지가 밟았을지도 모를 그라운드, 나의 아버지가 울고 웃으며 환호했을 관중석, 축구팬의 추억과 한국축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이번 촬영이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철거에 대한 서울시의 계획이 변동사항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철거 반대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여론의 목소리가 서울시를 움직일 만큼 크고 단호하지는 않은가 보다.

이제 11월이면 동대문 운동장은 역사 저편으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물론 많은 축구팬의 기억 속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미 아스팔트로 채워진 그곳에서 동대문 운동장을 추억하는 마지막 기념 경기를 하자는 말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이 헐리기 전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축구의 밑거름이 되어준 동대문 운동장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하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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